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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묵상 "주님을 따르려면"(사순절 묵상 둘째 날 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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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현풍충성교회
댓글 0건 조회 388회 작성일 23-02-23 21:12

본문

116-20 “주님을 따르려면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안드레..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이때 주목하여 보게 되는 것은.. 그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참 중요합니다. 오늘 이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만약 어느 것이라도 버리지 못하여 안타까워하였다면.. 그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따르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주님의 부르심에 아멘으로 따랐습니다. 그들의 생업과 가족까지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물론 이들은 세상을 바꿀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따름이었기에.. 생업을 버릴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의 따름에서도 버릴 것을 버리고 따라야 함을 분명합니다. 특히나 우리의 영적인.. 신앙의 삶에서 버릴 것을 버리고.. 주님께 맡김으로 우리도 주님을 즐거이 따라갈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나 이번 사순절 기간 동안에.. 주님의 십자가를 함께 진다는 믿음으로 사순절을 지키기로 작정한 우리는 굳은 결단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가는 이 따름을 위해 버릴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버림에는 주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전제됨을 깨닫습니다. 주님을 확신하게 믿지 못하면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그것도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를 수는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남겨두어야 합니다. 혹시나 하면서... 그러나 주님은 모든 것디 가하시고 능하시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생명의 길이고 은혜와 축복의 길.. 영생의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만 믿고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잡는 것이 많습니다. 바로 세상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길로 따라가는데 우리를 방해하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를 계속 붙잡고 있습니다. 이것은 때로는 불신앙으로.. 의심으로.. 두려움으로.. 우리를 붙잡습니다. 내가 따라가는 이 길이 정말 맞는가? 저 사람들이 가는 길이 훨씬 좋아 보이는데.. 즐거워하는데.. 행복할 것 같은데.. 그러면서 자꾸 뒤를 돌아보고.. 완전히 끊어내지 못하면..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줄에 묶인 양은 그 줄의 길이만큼만 자유합니다. 1M면 반경 1M까지만 자유합니다. 100M100m만큼만 자유합니다. 1m 보다야 훨씬 넓지만.. 그 양도 결국 거기까지만 자유한 것입니다. 그런데 선한 목자의 양은 줄이 없습니다. 그저 목자의 음성만 따라가면 됩니다. 그래서 그 양은 항상 자유합니다. 목자와 함께 언제나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를 마음껏 거닐고 누릴 수 있습니다. 때로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도.. 선한 목자의 완전한 보호하심이 있기에.. 안전하고 평화롭게 그 자유를 계속 누릴 수 있습니다.

 

믿음의 따름은 이와 같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지금도 우리와 임마누엘 동행하시는 주님은 우리를 가장 자유한 자녀로 인도하십니다. 무엇을 먹고 마시든, 무엇을 하던.. 주님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면서..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풍성히 누리는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꾸.. 마지막 그 한 줄을 끊어내지 못합니다. 물질, 성공, 행복, 아니면 개인적인 가치관에서 비롯한 그 한 줄을 끊어내지 못하고 결국 자유한 것 같지만.. 항상 그 줄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엘리사를 죽이기 위해 아람의 대군이 엘리사가 살고 있는 도단성을 포위하였습니다. 이 장면을 본, 엘리사의 사환은 놀라서 어쩔 줄 몰라하였습니다. 이때 엘리사는 하나님께 그 종의 눈이 열리도록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환의 눈이 열리자.. 아람의 대군을 포위하고 있는 하나님의 불말과 불병거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참 중요한 것이, 이 사환은 이미 오래전부터 엘리사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경험하였습니다. 한 과부의 기름이 온 동네에서 빌려온 그릇을 가득채우는 것을.. 쇠도끼가 연못에서 솟아 오르는 것을.. 나아만의 문둥병이 고침받는 것을.. 수많은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의 눈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이 정도까지.. 이 대군까지는 어쩔 수 없는 하나님으로 믿었을 때.. 그는 지금까지 누리는 하나님은 전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늘 자주 나누지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만큼 하나님을 풍성하게 누리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에서 물이 나고... 날마다 만나를 주시는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되시는 그 하나님을 항상 경험하고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항상 애굽을 바라보고, 애굽을 그리워하고, 옛생활에 대한 끈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모든 인류중에서 가장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렸지만, 광야에서 다 죽어야 했습니다. 바로 그 끈을 끊어내지 못함으로.. 광야를 방황하다가 거기에서 죽고 만 것입니다.

 

반면 바울을 보시면.. 그가 가진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배설물로 여기면서 버렸습니다. 더 이상 그것이 그의 복음의 길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다 버렸습니다. 다 끊어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 한분만으로 충만하였습니다. 그럴 때 그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복음을 복음으로 누리는 삶을 살면서.. 늘 예수님 때문에 행복한..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행복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과 사울왕의 차이는 왕권을 버릴 수 있는것과 버리지 못한 것의 차이입니다. 다윗은 왕으로서의 모든 것을 하나님앞에서 다 버리고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니밍 주시는 은혜를 풍성히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그것을 버리지 못하여 하나님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잃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바라기는 이번 사순절에 우리의 믿음의 삶의 참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그 끈을 끊어내고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깊이 묵상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주님을 따르기로 작정한 이때에.. 주님께 구하고 아뢰어.. 그 끈을 끊어내고.. 주님과의 아름다운 동행을 이루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로 하여금.. 늘 완전한 따름이 되지 않게 하는 그것..주님 보다 더 즐거워하는 그것, 더 소중히 여기는 그것.. 주님 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그서.. 주님 보다 더 자주 만나고 보는 그것.. 그것을 이번 사순절에 십자가의 은혜안에서 끊어내고.. 더욱 은혜안으로.. 십자가의 은혜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번 사순절이 우리의 신앙 생활에 참 자유를 더욱 누리는 전환점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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